[2017 서울 정책박람회가 끝난 후] 작년까지 정책박람회는 ‘시민의 제안을 정책화한다’는 컨셉이었다. 다른 말로 하면 “시민의 제안을 받아주세요.” 그 제안의 수용 여부, 즉 정책결정권은 지방 정부에 있었다. 다양한 시민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시도는 신선했으나 여전히 결정권이 단체장과 공무원들에게 있는 한계는 명확했다. 받아주면 좋고, 받아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.
단체는 집단의 힘을 이용해 계속 요구할 수 있으나 시민 개개인은 지방정부의 판단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. 안되는 이유는 꽤 복잡하지만, ‘할 수 있는 것을 해준다’로는 정치와 행정의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없다. 결국 정치와 행정의 시스템이 혁신되거나 더 깊은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선한 의지를 지닌 단체장과 공무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.
제안을 넘어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? 참여민주주의에 한 발 더 들어가게 하는 과정은 무엇일까?
2016년 하반기부터 몇 개월 동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‘내가 나라의 주인이다’고 이야기했다. 이 요구의 이면에는 중앙/지방정부에게 경청과 소통,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. 정부는 나라의 주인들이 결정한 내용을 예산과 제도를 잘 검토해서 잘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. 결정은 시민이 하고, 그 결정의 취지를 잘 살려고 정책화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어야 한다.
올해 정책박람회는 시민들이 제안한 정책을 온라인, 거리, 현장 직접 투표로 결정하면 서울시는 100일 동안 그 결정을 시행할 것을 전제로 구체적인 법과 제도, 예산을 따져서 정책화하고, 이를 시민들에게 보고하도록 했다. 방향을 전환했다. 박람회 기간 중의 특별한 캠페인이었지만 이것은 새로운 시도를 넘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어야 한다.
4년에 한 번 투표로 정치인과 단체장을 뽑고, 모든 권한을 위임을 해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할 정책들을 제안하고, 투표하고, 그 투표결과를 토대로 중앙/지방정부는 정책화한 후에 다시 시민들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.
중앙/지방 정부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일을 하는 곳이다.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된다. 경청과 소통을 넘어 참여와 결정으로, 방향을 그렇게 전환한 것, 아쉬움은 남지만 이 정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.
“시장님, 우리의 제안을 받아주세요”라는 부탁, “우리의 제안을 수용해줘서 고맙습니다”라는 감사의 인사가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. 선한 단체장과 공무원의 의지로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.